The Outsiders (5)

2020. 12. 20. 20:36개야구

디 어슬레틱 선정, 명예의 전당에 입성하지 못한 선수들 중 가장 위대한 선수 100인에 대해 다룹니다.

 

The Outsiders

 

'The Thrill'  William Nuschler Clark Jr. (born March 13, 1964)

80. 윌 클락

San Francisco—Texas—Baltimore—St. Louis, 1986-2000

1976게임 8283타석 2176안타 284홈런 1205타점 67도루

.303 .384 .497 .880 / 56.5bWAR

 

커리어 통산 타율만 봐도 알 수 있듯 아름다운 스윙을 가졌던 1루수. 공을 최대한 기다렸다가, 끝에 가서야 배트를 휘두르는 클락은 후배 타자들의 귀감이었다. 1989년 리그 챔피언시리즈에서 홀로 컵스를 격파한¹ 일화는 아직까지 회자되고 있다.

 

(역1. CS 5경기 OPS 1.882)

 

윌이 선사하는 황홀감은 그냥, 그냥 존나 짱이었다. 클레이튼 커쇼의 백넘버(#22)는 텍사스에서 5년 동안 1루수로 뛰었던 윌 클락의 배번을 착용한 것이다. 어린 커쇼는 세계 최고의 투수를 꿈꾸면서 성장하지 않았다. 커쇼 역시 그 시절의 꼬맹이들처럼 클락의 우아하지만 맹렬하고, 단순하지만 꿈과 같은 스윙을 보면서 자란 것이다.

 

윌 클락은 첫 풀타임 시즌부터 무려 0.308의 타율과 38홈런, 그리고 91타점을 기록한다.

 

이 젊은 타자의 등장에 야구팬들은 미래의 트리플 크라운 타자가 나타났다며 열광했다. 하지만 그 이후로 윌은 단 한 번도 30홈런+ 시즌을 경험하지 못한다. 그래도 올스타 출장 6회, 실버 슬러거 2회, 골드 글러브, 챔피언십 시리즈 MVP를 수상했다.

 

1989년에는 토니 그윈과 마지막까지 타율로 경쟁했다. 은퇴할 때까지 기계처럼 라인드라이브 타구를 뽑아냈다. 다소 빈약한 슬래시라인을 가졌지만, 야구보다 사냥을 더 사랑했던 그는 이런 말을 남기고 주저없이 리그를 떠난다.

 

"난 야구방망이보다 사냥용 총을 갖고 있는 게 더 좋아."

 

(여담. 본문에 언급되었다시피, 'The Thrill' 클락은 클레이튼 커쇼의 아이돌이자 샌프란시스코 자이언츠의 영구결번.)

 

 

Urbain Jacques Shockcor (September 22, 1890 – September 9, 1928)

79. 어번 샤커

New York Yankees—St. Louis Browns, 1916-1928

412게임 187승 112패 200완투 28완봉승

2681.2이닝 983삼진 3.17ERA / 58.7bWAR

 

겉으로 드러나는 모습 이상으로 영리한 투수.

 

샤커는 흠잡을 데 없는 제구력과 빼어난 투수 수비로 정평이 난 선수였다. 또한 메이저리그 역사상 번트를 가장 잘 대는 선수였다고 한다. 양키스에서의 좋은 활약은 물론이고 세인트루이스에서는 4년 연속 20승을 수확한다.

 

샤커는 굉장한 승부욕을 가진 사람이었다고 전해진다. 승리하기 위해서 이 방법 저 방법을 동원해가며 상대 팀을 분석했다. 샤커는 열정적인 신문 구독자였는데, 신문을 읽으면서 누가 잘 치는 타자고 누가 못 치는 타자인지 파악했다. 타자들의 밸런스를 무너뜨리기 위해 이런저런 방법들을 연구했는데, 발을 바꾼다거나 벨트를 올려본다거나 하는 방법까지 동원했다고.

 

제구력이 뛰어난 투수답게 볼넷은 거의 주지 않았다. 또 리그에서 9이닝당 허용 사사구가 가장 적은 투수로 두 번이나 선정되었다. 번티스트기도 했고. 이 모든 요소가 매년 샤커의 피칭을 효과적으로 만들었다. 1927년에는 아직도 전설로 회자되는 양키스의 타선²과 함께 멋지게 활약한다.

 

(역2. 이 해의 양키스 타선은 Muderer`s Row, 살인 타선이라 불리며 이름 그대로의 흉악한 점수를 뽑아냈습니다. 명예의 전당에도 이 시절의 일화가 보존되고 있습니다. 루 게릭, 베이브 루스 둘이서만 무려 107홈런을 쳐냅니다. 각각 47홈런, 60홈런.)

 

이때 샤커는 쓰레기 심장(...)이라는 별명으로도 불렸는데, 이건 그가 평생을 심장 질환과 싸워가며 활동했기 때문이다. 어떤 책에서는 앉거나 일어선 채로 자야 할 정도로 심장이 안 좋았다고도 전해진다.

 

어번 샤커는 1927년에 양키스를 우승으로 이끌고, 이듬해 폐렴으로 인한 심부전으로 사망한다.

 

(Jorge Rafael Posada Villeta (1970년 8월 17일 ~ )

78. 호르헤 포사다

New York Yankees, 1995-2011

1829게임 7150타석 1664안타 275홈런 1065타점 20도루

.273 .374 .474 .848 / 42.7bWAR

 

1990년대, 그리고 2000년대 양키스 왕조의 홈 플레이트를 충직하게 지켜냈던 일꾼. 스위치 히터였다.

 

포사다는 뉴욕 양키스에 4번의 우승을 안겨준 포수였다.

 

비록 커리어에 골드 글러브 수상 경력이 빠져있긴 하지만, 포수라는 직업에 무척이나 애정을 가진 사람이었다. 오죽하면 "내게서 홈 플레이트 뒤에 서는 것을 앗아간다면, 내 심장을 가져가는 거나 다름없다."는 말을 남길 정도였으니까.

 

포사다가 명예의 전당 헌액 후보로서 부족하다고 여겨지는 까닭은, 아무래도 뛰어난 수비를 보여주지 못했다는 부분에 있다. 그러나 통계적으로 접근해보았을 때, 실제 포사다의 포수 수비 능력은 리그 평균이거나 평균에 조금 미치지 못할 뿐이었다.

 

또 포수로서 활동한 경력이 짧다는 것도 단점이다. 포사다는 27살까지 포수로 풀타임을 소화한 적이 없었으니까.

 

  Louis Rogers "Pete" Browning (June 17, 1861 – September 10, 1905)

77. 피트 브라우닝

Louisville—Cleveland—Pittsburgh—Cincinnati—St. Louis—Brooklyn, 1882-1894

1183게임 5315타석 1646안타 46홈런 954득점 254도루(도루 기록 불확실)

.341 .403 .467 .869 / 40.6bWAR

 

'Gladiator', 혹은 'The Louisville Slugger'

 

피트 브라우닝은 커리어 동안 0.341의 타율을 기록하고 3번이나 타격왕을 차지한다. 배트를 휘두르는 것만큼이나 술을 좋아했다고 전해진다. "건배하기 전까지는 안타를 칠 수 없다"는 유명한 말도 남아있다.

 

1884년, 버드라는 이름을 가진 관객이 루이빌의 슈퍼스타 브라우닝이 경기 도중 배트를 부러뜨리는 모습을 목격한다. 이 광경을 보고, 겨우 17살의 공장 노동자였던 버드는 브라우닝을 위해 새로운 야구방망이를 만들겠다고 제안한다. 전해지는 일화에 따르면 버드가 선물한 배트를 사용한 첫날, 브라우닝은 3개의 안타를 기록했다고. 이때 버드가 세운 야구용품 회사가 바로 루이빌 슬러거(Louisville Slugger® Official Online Store - Shop Baseball, Fastpitch & Slowpitch Gear)

 

브라우닝은 환상적인 타자였다. 3할을 밥먹듯이 쳤고 타격왕도 세 번이나 차지했다. 1887년의 타율은 4할에 육박한다. 하지만 평판이 형편없었다.

 

(여담. 피트 브라우닝은 경기 때 사용하는 방망이를 무척이나 세심하게 신경 썼다고 합니다. 또 사실상 유년기부터 청각을 상실한 상태였고, 어마어마한 두통을 달고 살았다고 하네요. 때문에 알코올 의존도 더욱 심해져갔지만 마시는 만큼 더 잘 쳤다고.)

 

 

아빠 본즈의 환한 미소. Bobby Lee Bonds(1946년 3월 15일 ~ 2003년 8월 23일)

76. 바비 본즈

San Francisco—New York Yankees—California—Chicago White Sox—Texas—Cleveland—St. Louis—Chicago Cubs, 1968-1981

1849게임 8090타석 1886안타 332홈런 1258득점 461도루

.268 .353 .471 .824 / 57.9bWAR

 

타자가 지닐 수 있는 가장 뛰어난 재능에 대한 상징적인 기록, 30-30 시즌을 무려 5번이나 달성했다. 20-20 시즌은 무려 10번이다. 바비 본즈는 외야수 골드 글러브를 3번이나 수상³하고 리그 득점왕도 두 번이나 해먹었다.

 

(역3. 메이저리그 골드 글러브는 보통 중견수들이, 그것도 리그에서 수비력이 제일 뛰어난 중견수들이 가져갑니다. 과거에는 그런 경향이 더 심했고, 바비 본즈는 우익수였습니다.)

 

은퇴 시점에는 자신의 가장 친한 친구였던 윌리 메이스와 함께 300-300 커리어를 만들어냈다. 이 당시에 메이저리그에는 단 둘뿐인 기록⁴이었다.

 

(역4. 300-300은 2020년 현재 기준으로도 메이저리그 역사를 통틀어 보유자가 10명이 채 안 되는 대기록입니다. 배리 본즈, 알렉스 로드리게스, 윌리 메이스, 안드레 도슨, 카를로스 벨트란, 레지 샌더스, 스티브 핀리, 바비 본즈. 본즈만 두 명이네요.

 

한번 바비 본즈를 자세히 살펴보자. 30-30 시즌 5번, 20-20 시즌 10번, 골드 글러브 3개, 300-300의 커리어.

 

이런 사람이 대체 왜 명예의 전당이 없는 거지?

 

이 질문에는 이렇게 대답할 수도 있다. 부상, 연봉 협상에서의 분쟁, 알코올 중독, 계륵처럼 뭔가 부족했던 선수 경력. 누가 이렇게 말했다면 다시 묻고 싶다. 그런 선수였다면 왜 바비 본즈가 '명예의 전당에 헌액되진 못했지만, 위대한 선수'로 알려졌을까?

 

바비는 정말 난제다. 차세대 윌리 메이스라고 불렸지만 결국 그 기대감에는 미치지 못했다. 바비 본즈는 강하게 치고, 빠르게 달리고, 세게 던질 수 있었지만 스윙에 커다란 결점을 가지고 있었다. 빅 리거로 거듭난 이후로 삼진왕은 늘 그의 차지였다.

 

최근의 기준ⁿ으로 살펴본다면, 바비 본즈가 기록했던 한 시즌 188삼진쯤은 큰 의미가 없어 보인다. 아쿠냐 주니어는 아예 시작부터 188삼진을 당했고 스탠튼은 한술 더 떠서 211삼진을 당했다. 그렇지만 강타자로 정평이 나 있다.

 

(역5. 요즘 홈런 타자들이 타석에서 당하는 삼진은 투수에게 내는 세금 정도로 받아들이는 분위기)

 

하지만 바비 본즈가 활동하던 시절에는 타자가 삼진을 당하면 마치 크나큰 재앙처럼 여겨졌다. 강한 타구를 만들어내기 위한 그의 노력은 딱한 성취 정도로 취급될 따름이었다. 무엇보다도 바비는 어마어마한 사고뭉치였다. 그중에는 정말로 그가 저지른 잘못도 있었고, 그의 잘못이 아닌 것도 있었다. 바비는 74년부터 79년 사이에 무려 6번이나 트레이드되었다.

 

그렇더라도 바비는 그의 위대한 아들보다 더 빠르고 강한 어깨를 지녔다는 사실을 잊어선 안 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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