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0. 12. 17. 11:11ㆍ개야구
디 어슬레틱 선정, 명예의 전당에 입성하지 못한 선수들 중 가장 위대했던 선수 100인을 다룹니다.
95. 퀸시 트루프
St. Louis Stars—Detroit Wolves—Homestead Grays—Kansas City Monarchs—Chicago American Giants—Indianapolis ABCs—Cleveland Buckeyes—New York Cubans, 1930-1948
*니그로리그에서 활동했던 선수.
강력한 파워를 지녔던 스위치 타자. 퀸시 트루프는 항상 3할의 타격을 유지하며 활약했다. 이 전설적인 포수는 동물적인 반사신경과 강한 어깨로 사람들을 곧잘 놀라게 만들었다. 당대의 야구선수들 중 가장 무거운 방망이를 사용했던 타자로 유명한데, 트루프는 39살의 나이로 1952년 메이저리그에 데뷔한다(10타수 1안타).
니그로리그에서 퀸시 트루프가 저평가된 부분은 그의 리드(the quality of catching, 게임 콜링을 이야기하는 것 같네요.)였다. 우리가 야구 사상 최고의 포수를 꼽을 때, 조시 깁슨을 염두하곤 한다. 하지만 당시 비즈 맥키가 조시 깁슨보다 더욱 훌륭한 포수라고 주장하는 사람들은 꽤 많았다.
그리고 퀸시 트루프가 있다.
그는 30년 동안 니그로리그, 멕시칸리그, 쿠바. 그리고 야구 경기가 진행되는 곳이라면 어디라도 돌아다녔다. 하지만 무려 20년의 세월이 흐르고, 트루프의 운동 능력이 떨어지고 난 뒤에야 겨우 메이저리그에서 뛸 수 있는 기회가 주어졌다.
트루프의 팀메이트였던 미니 미뇌소는 퀸시 트루프의 머리를 가리키면서 "저기엔 아주 많은 것들이 들어있어요"라고 말했다.
94. 페르난도 발렌수엘라
Los Angeles—California—Baltimore—Philadelphia—San Diego—St. Louis, 1980-1997
453게임 173승 153패 2930이닝 2074삼진 / 3.54 era / 33.0 bWAR
1981년, 이 놀라운 신인은 25경기를 출장해서 8번의 완봉을 거둔다. 그리고 ROY, 그리고 CY Young Award를 동시에 수상하며 "Fernandomania"라는 별명을 떨칠 정도로 전국구 좌완으로 자리잡는다.
저명한 스포츠 방송 진행자 하이메 자린(역주. 메이저리그 명예의 전당 Ford C. Frick Award 수상자, 스페인어 라디오 중계, 장내 아나운서 등을 했었던 인물)은 발렌수엘라를 보고 이렇게 말했다.
"페르난도 발렌수엘라는 야구 역사상 다른 어떤 선수들보다도 많은 팬들을 만들어냈다. 페르난도가 메이저에 도달했을 때 많은 영향을 주었다. 이 19살짜리 풋내기는 통통했고, 긴 머리를 휘날렸으며, 영어는 한 마디도 못했고 인디언 같은 얼굴을 했다."
발렌수엘라는 루키 시즌부터 경이로운 활약을 펼쳤다. 이후 7시즌 동안 11게임을 뛰었고, 1500개의 삼진을 빼앗았다. 그러나 발렌수엘라는 27살이 되는 해부터 급격히 무너진다. 발렌수엘라가 명예의 전당 투표에서 낮은 지지를 받게 되는 이유다.
하지만 단언하건대, 페르난도 발렌수엘라가 경기와 사회에 엄청난 영향을 끼친 투수였음은 분명한 사실이다. 그것도 명예의 전당 선수들 이상으로.
93. 대럴 에반스
Atlanta—San Francisco—Detroit, 1969-1989
2687게임 10737타석 2223안타 414홈런 98도루 / .248 .361.431 .792 / 58.8 bWAR
Howdy(역주. 별명)는 분명 저평가받은 선수다. 그는 묵묵히 자기 일을 했다. 대럴은 많이 걸어나가고 여러 포지션을 소화해냈다. 또한 훌륭한 수비를 해냈다. 심지어 커리어 동안 414개의 홈런을 쳤을 만큼 파워도 좋았다.
대럴의 다른 별명은 UFO인데, 이 선수는 경기 중에 미확인 비행 물체를 목격했다고 주장하는 선수이다.
빌 제임스(역주. 세이버메트릭스의 대가)는 과소평가된 선수들의 특징을 논한 적이 있다. 빌 제임스가 공개한 특징에 따르자면, 대럴 에반스는 무려 일곱 항목이나 해당하는 선수다.
사실 대럴 에반스의 낮은 타율은 그가 명예의 전당에 어울리지 않는다고 여겨지는 가장 큰 이유기도 하다. 대럴의 이름이 투표용지에 올라갔을 때, 그보다 많은 홈런을 친 타자는 슈미트(마이크 슈미트, 필라델피아의 영구결번, 명예의 전당 첫턴. 득표율은 96.52%)밖에 없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대럴은 겨우 8장의 표만을 얻는 데서 그쳤다.
대럴 에반스는 커리어 대부분을 약팀에서 보냈고, 선수생활 처음이자 마지막으로 경험한 월드시리즈에서는 15타수 1안타를 기록했다. 올스타에 뽑힌 것도 2번뿐, MVP를 선정할 때조차 TOP10에 포함된 적이 없다. 그 정도로 존재감이 없었다.
1973년, 빅 레드 머신의 필두인 피트 로즈가 0.338의 타율을 기록하며 115득점으로 MVP를 수상한다. 하지만 같은 해 대럴 에반스의 출루율이 더 높았고, 41개의 홈런과 104타점, 114득점을 기록한다. 무엇보다도 그는 매우 훌륭한 수비력을 지닌 3루수였다. 솔직히 말하면 로즈보다 훨씬 더 나았다.
그러나 MVP 순위는 겨우 18위에 그쳤다. 그는 이와 비슷한 일을 몇 번이나 더 겪어야만 했다. 대럴 에반스는 은퇴 당시 역대 홈런 갯수 20위, 출루횟수 29위, 타점 49위를 기록한 타자였다.
92. 스티브 가비
Los Angeles Dodgers—San Diego, 1969-87
2332게임 9466타석 2599안타 272홈런 83도루 / .294 .329 .446 .775 / 38.1 bWAR
"캡틴 아메리카" 스티브 가비는 내셔널 리그에서 1207경기 연속 출장 기록을 달성했다. 뽀빠이의 팔뚝과 근사한 미소를 가진 그는 한 시즌 200안타 이상을 6번이나 기록했고, 4번의 골드 글러브를 수상했다.
스티브는 당대의 메이저리그 아이콘 중 하나였다. 그 시절에 살았던 사람들은 스티브 가비가 명예의 전당에 헌액되지 않았다는 사실을 알고 어리둥절해한다. 그들의 요점은 다음과 같다.
- 스티브 가비는 그 시절에 가장 유명했던 선수였다. 스티브는 74년에 MVP를 수상했고, 76년에는 MVP 득표 2위를 차지했다. 70년대부터 80년대 초반, 다저스 타선에서 매년 꼬박꼬박 100타점씩 적립해준 기특한 타자였다.
반면에 필자는 스티브가 왜 명예의 전당에 헌액되지 못했는지도 알고 있다.
그는 많이 출루하지 못했으며, 장타율도 5할이 채 되지 않았고, 선수생활 동안 기록한 38.1의 WAR는 명예의 전당 선수라고 생각하기에 상당한 무리가 있다. 그리고…… 그가 야구를 그만둔 이후로 보인 행보는 논란의 여지가 상당히 많다.
스티브는 명예의 전당이란 무엇인가, 논쟁하는 데에 있어서 핵심을 관통하는 선수이다. 네임밸류, 가장 유명했던 야구선수만을 헌액해야 하는가? 만약 당신이 그렇게 생각하는 사람이라면, 스티브 가비는 명예의 전당에 어울릴 법한 선수다.
반대로 커리어 스탯이 가장 중요한가? 그렇다면 스티브의 기록을 보라. 그의 형편없는 출루율과 WAR를 발견한다면, 당신은 명예의 전당에 택도 없다고 말할 것이다. 자, 한번 생각해보자. 명예의 전당이란 무엇인가?
91. 데이브 파커
Pittsburgh—Cincinnati—Oakland—Milwaukee—California—Toronto, 1973-1991
커리어 : 2466게임 10184타석 2712안타 339홈런 154도루 / .290 .339 .471 .810 / 40.1 bWAR
코브라(역자. 별명)는 빅리그에서 활약하기도 전에 "차세대 클레멘테"라고 불렸던 유망주다.
처음 5년간은 그 기대에 부응했다. 데이브는 당연하다는 듯이 치고, 달리고, 넘기고, 던졌다. 코브라가 야구로부터 완전히 탈선해서 한참을 방황하다가 돌아왔을 때, 그는 40살이었다. 하지만 그때도 MVP 표를 받았다.
명예의 전당이 존재하는 한, 앞으로도 이것이 무엇인가라는 질문은 계속 나타날 것이다. 명예의 전당에 들어가려면 얼마나 커리어를 유지해야 하는가?
데이브 파커는 75년부터 79년까지, 피츠버그에서 경이로운 5년을 보냈다. 코브라는 훌륭한 타자였다. 또한 훌륭한 야수였고, 훌륭한 주자였다. 심지어 담장을 넘겨버리는 능력도 갖고 있었다. 이 기간 동안 데이브 파커는 0.909의 OPS, 3개의 골드 글러브, 1번의 MVP를 만들어낸다. 3위 득표 역시 2번이나 차지했다.
그렇지만 독자 여러분도 아시다시피, 데이브는 마약에 휘둘렸다. 기량은 쇠퇴했고 전성기는 영영 잃어버렸다. 방황의 시간을 보내다가 85년에야 겨우 신시내티에서 재기에 성공한다. 42개의 2루타, 125개의 타점. 그리고 0.312의 타율을 기록한다.
적어도 그의 재능만큼은 의심할 수 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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