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4. 4. 4. 13:30ㆍ뻔하지 않은 거
원래 전자제품이라는 것들이 다 그렇긴 한데
PC가 진짜 뜬금없이 고장이 났다.
만으로 5년 꼬박, 포맷도 없이 쓴 컴퓨터고
가끔 비슷한 우여곡절이 있었지만(주로 마이크로소프트 업데이트&service.msc 관련),
게임용으로도 사무용으로도 늘 만족시켜줬던 고마운 PC였다.
일단 증상은 이러하다.
(바이오스 버전 기가바이트 f65e, 작년쯤 업데이트)
1. 부팅이 안 된다
2. 바이오스 진입이 안 된다
3. 검은 화면에서 진행되지 않는다 (30분, 1시간 등 아무리 기다려도 화면이 안 넘어감)
3. 1,000번 시도하면 1번 꼴로 바이오스 진입에 성공한다. (5분, 20분 등)
시도해본 방법은 이러하다.
1. 먼지 제거 (에어컴프레셔) - 부팅 안 됨
2. 램 재장착 - 부팅 안 됨
3. 시모스 클리어
4. 저장용 하드 디스크 제거 - 모두 부팅 안 됨
5. SATA 케이블 교체 - 부팅 안 됨
6. 저장용 NVME 재장착 - 부팅 안 됨
7. 수은 전지 교체 - 여전히 부팅 안 됨
8. 바이오스 우선 순위 변경 시도
- 우선 순위에서 Windows Boot Manager가 사라진 상태
- 포맷하지 않고 부팅시스템을 레거시(legacy)에서 UEFI로 변경하기 (tistory.com)
9. 해결하기 위해서 USB 부팅 시도 - 바이오스 진입도 안 됨
부팅에 실패할 때, 혹은 컴퓨터에 뭔가 문제가 생겼을 때, 대부분 먼지를 털고 램을 뺐다가 다시 끼우면 해결이 된다.
그래도 안 되면 수은전지를 바꿔본다.
그러면 바이오스에 들어가서 윈도우를 재설치하고, 대부분 여기서 모든 문제가 해결된다.
안 되면 부품을 의심해야 한다.
특정하기 쉽지 않다. 케이블만 바꿔도 바로 멀쩡해지기도 하지만, 문제가 어디 숨어있는지 모를 때는 정말 까마득하다.
가장 정신병이 오는 단계고, 나는 컴퓨터를 그리 잘 다루는 사람도 아니다. 비슷한 문제를 호소하는 사용자들의 키워드를 넣고 검색해서, 거기 달린 댓글들을 무작정 수행할 뿐인 시간이 이어졌다.
자포자기한 심정으로 마지막으로 윈도우즈를 설치한 SSD를 제거하자, 겨우 부팅이 된다.
OS가 날아간 상태라서 부트 단계가 넘어가진 않지만, 이제 누가 문제인지 명확해진 것이다.
윈도우를 설치한 SSD가 돌연사했다.
아 얘가 범인이구나. 반색했지만 그런 생각도 들었다. 아 하필 죽어도 얘가..
크리스탈인포가 슬슬 하드 유기하라고 작년부터 경고했던 터라, 고장 원인은 아마 얘일 거라고 생각했었다
삼성 860evo 500GB
정말 오랫동안 잘 쓰고 있었는데,
그것도 전용 펌웨어인 삼성매지션으로 모니터링 했을 때 상태 ㅆㅅㅌㅊ라고 꾸준히 보고했던 SSD가 죽은 것이다.
윈도우 설치용이었지만, 용량이 좀 적긴 했다.
요즘 게임들 용량은 무시무시해서 몇 개 깔지도 못하니까.
이만하면 오래 잘 썼고 새로 사면 되는 거다. 근데..
사면 되는데..
아.. 안에 있는 데이터 어쩌지
라는 생각에 아득했다.
빌게이츠형아가 마소 이메일 동기화를 강력하게 추진한 덕분에 원노트 필기, 워드 같은 것들은 싹 다 생존했는데, 그거 외에는 아무래도 건지기 힘들 것 같았다. 사진이나, 연말정산 자료나, 탭이 8개도 넘게 열려있던 중요한 메모들이나.. 뭐 그런 것들.
당황했지만 일단 혹시나 해보는 마음으로, SSD 수리 방법을 찾아봤다.
지인이 컴퓨터는 미덥지 못한 물건이니 부품 박스 같은 거 버리지 말라고 했었는데, 그 조언이 이번에 정말 큰 도움이 됐다.
작년에 추가로 장착한 970evo 1TB나, 19년도에 컴퓨터 처음 살 때 달았던 860evo 500GB나, 그 전에 한 16년돈가 썼던 860evo 250GB 같은 자잘한 부품 박스가 다 있었다.
그래서 박스에 있는 시리얼 넘버를 자신 있게 적어 넣었는데, 아.. 조회가 안 되는 것이다.
뭐지? 나 정품 샀는데?
인터넷에 널린 게 A/S 문제로 골치 아프다는 후기 아닌가. 꼴랑 몇 천원, 몇 만원 차이면 그냥 정품 사는데?
거기에 걸어보기로 했다.
밤새 컴퓨터랑 씨름하고, 좀 지친 상태로 전화를 걸었다. 신호가 몇 번 가지도 않았는데 통화가 연결됐다.
센터에 계신 여성 직원이 정중히 응대해주셨다.
나 : 컴퓨터에 문제가 생겼다. 부품 하나씩 체크해봤는데, 아마 SSD 문제라고 생각된다.
직원 : 안타까운 일이다. 혹시 증상이 어떻게 되시는지
나 : 부팅이 안 되고, 바이오스 진입도 안 된다.
직원 : 그런가. 수리와 교체 양쪽 모두를 도와드리고 있다.
나 : 와 정말요
직원 : 정품이라면 당연히 해드린다.
(제품 품질보증/무상서비스 기간 내에서라면 무상이며 배송비 또한 수리센터측에서 부담한다는 내용 고지)
직원 : 정품 확인이 필요한데, 혹시 구매 영수증 아직 갖고 계신지. 아니면 시리얼넘버가 등록되어 있으신가.
나 : 보증기간 조회하려고 했는데여, 안 뜨는 거에염,, 근데 제가 진짜 정품 샀는데,, 왜 안 뜨는지 잘 모르겠다.
직원 : 그런 경우가 있다. 시리얼 넘버 한번 불러보시라. 확인해보겠다.
안 되면 어쩌지? 라는 생각이 있었는데, 천만다행으로 시리얼넘버는 정품으로 확인되었다.
나 : (자신감 ↑ ↑ ↑) 그렇죠? 아~ 정품이네 다행이다. 그렇죠! 분명 정품을 샀는데~ 제가
나 : (자신감 ↓ ↓ ↓ ↓ ↓ ) 앗, 근데, 아.. 지금 2024년~ 4월이네요? 음.. 5년이..
직원분이 친절하게 설명해주셨다.
구매일을 모를 때는 제품에 표시된 제조일로부터 각 제품의 품질보증기간 플러스 3개월이 되는 거라고.
직원 : 제조일자가 19년 4월로 확인되셨거든요.
나 : 아유 다행이다 아유 감사합니다.
돌연사한 860evo 제조일자가 19년 4월, 수리센터에 전화 걸었을 때가 24년 4월 3일.
그러니까 5년. 와.. 기한 만료 직전이다.
내 스스디는 정말 아슬아슬하게 걸려있던 거였다.
살아있을 때 그렇게 헌신적으로 일해주더니, 갈 때도 딱 알맞게,,
눈물이 날 것 같았다. 양품은 떠날 때조차 아름다운 법인가?
직원 : 센터에서 테스트 후, 수리 혹은 교체를 도와드리겠다.
나 : 앗 감사합니다 정말 감사합니다
직원 : 수리센터가 수원이나 용산에 있다. 내방하실 수 있으신가?
나 : 아 제가 인천에 살아서..
직원 : 그러면 제품을 보내주셔도 된다. 배송료 저희가 부담해드리니 착불로 보내시라.
ㄹㅇ??
우체국 택배를 이용했다.
다음날 오전에 도착했고, 바로 수령하셨다.
우리나라 등기우편 진짜 말도 안 되게 빠르다는 생각이 들었다.
그리고 약 40분 후.
정확하게는 11시 06분에 전화가 한 통 걸려왔다.
직원 : 안녕하세요?
나 : 아이고 안녕하세요 선생님
직원 : 제품을 테스트해본 결과, 말씀해주셨던 증상과 동일하네요.
나 : 아.. 그렇군요
직원 : SSD라는 저장장치의 특성상, 데이터는 어쩔 수 없을 것 같아요.
나 : (망연자실) 그렇죠.
직원 : 해서, 제품 교환 괜찮으실까요.
나 : 정말요? 아유 감사하죠.
직원: 근데 860evo 500GB가 현재 단종된 제품이라서.. 870evo로 교체해드리려고 한다. 괜찮으실까요?
나 : 아니 정말요? 진짜요?
물론 그렇다고 보증기간이나 무상서비스기간이 새로 갱신되거나 하진 않는다.
설마 새 SSD로 교환받나 했는데, 넘버링도 업그레이드가 된 셈이다. 되게 기뻤다.
컴퓨터도 고장나고 자료도 날아가고. 밤새 안 되는 일에 용쓰고.
사실 득보다 실만 많은, 진짜 안 좋은 하루였는데 이상하게 우울한 기분이 안 든다.
윈도우 재설치하고, 업데이트 올리고, 뭐 그런 번거로운 과정이 밑도 끝도 없이 남아있지만
이렇게 일사천리로 깔끔하게 A/S가 진행된 건 처음이라서, 제조사에 대한 신뢰도가 엄청 올랐다.
이러려고 정품 쓰나보다. A/S 케어가 너무 압도적이다. 앞으로도 스스디는 삼성만 써야지